순천농업협동조합(조합장강성채)는 지난 2월18일 탑웨딩홀에서 2008년 대의원 총회를 개최하고 2008년도 사업실적과 결산보고를 했다.

이날 감사보고에서 현재 공사중인 본점 및 각 사업장의 고정투자가 늘어나면서 경영위기가 올 수도 있다며 조합원, 직원 모두가 합심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가지고 했다.

이어 이날 퇴임한 유상철 상임이사의 고별인사가 회의장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유 이사의 고별인사 내용이다.

고 별 인 사

존경하는 대의원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신규사업의 부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자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신규사업 부진과 이를 둘러싼 조직 안팎의 책임 공방에 대하여 더 이상 조직의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 하에 제가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8일 대의원 총회에서 저를 선출해주신 대의원 여러분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떠나게 됨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신규사업 추진과정에서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점이 있었거나 사업의 정당성을 부인해서 떠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다만 저를 희생양으로 삼아 모든 허물을 뒤집어씌워주시고 더 이상 조직의 에너지 낭비 없이 진행 중인 사업을 성공시키도록 협력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자리를 떠나고자 합니다. 아울러서 대의원 여러분께 고별인사 몇 마디 올리고자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대의원 여러분! 흑자 적자의 논리로 보면 자체감사의 지적이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적자가 나면 모두 나쁜 것입니까? 흑자만 나면 다 좋은 것입니까? 흑자만을 내야 한다면 협동조합 간판 내리고 주식회사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주식회사는 주주가 사업을 이용하지 않으니까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건 말건 이익만 많이 내서 배당만 많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이 아닙니다. 협동조합은 과정을 중시합니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의 핵심은 조합원이 사업을 이용하는 과정에 편익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결산보고서를 분석해보면 남도식품에서 4억62백만원, 파머스마켙에서 9억37백만원 계 13억99백만원 약 14억의 흑자를 낸 것을 메꾸고도, 전속관리비와 지도관리비 차감후 경제사업 손익은 약 69억23백만원 적자를 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70억 가까운 적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조합원이 돈을 주고 사 쓰는 비료, 농약, 사료, 자재, 농기계수리, 유류, 연쇄점 물건 등의 가격을 비싸게 받고 쌀, 과일, 채소 등의 농가 수매가격을 낮게 쳐주면 적자를 보지 않을 것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70억 만큼 농가에게 간접이익을 드린 것입니다. 반드시 흑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장바구니배달사업이 적자보는 사업이니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합니다. 일부러 사람을 채용하고 자동차를 구입해서 한다면 적자이겠지요. 이미 근무하는 직원의 일손을 덜고, 틈나는 자동차를 활용해서 조합원의 소량 농산물을 순회수집 판매해주는 일이 장바구니 배달사업입니다. 장바구니 참여농가는 고맙다고 절을 몇 번씩 합니다. 회계적 방법으로 비용을 산출하고 수익을 분석하는 것과 협동조합 사업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또 신규사업의 적자를 이야기합니다만 여러분 신규사업을 왜 합니까? 우리 관내에 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과일을 비싸게 사주기 위해 벌인 사업이 과일 가공사업이요, 푸대접받는 사질토쌀 대신에 친환경 밀과 친환경 콩을 기계화도입으로 연로하신 조합원이 편히 농사짓도록 길을 개척하고 과채류 대신에 인건비가 적게 드는 쌈채농사 개척하는 등 농업구조를 바꾸는 사업이 직영농장 사업입니다.

감사보고 자료에 의하면 2년간 신규사업 적자가 1,698백만원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인건비가 10억 3천만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규사업을 하기 위해 연봉 2,160만원 짜리 전문직 직원 1명을 채용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어차피 인건비를 줄 수밖에 없는 기존 직원을 활용했습니다. 따라서 신규사업 추진을 위한 적자는 7억11백만원이 난 셈입니다. 물론 업무미숙과 시장상황의 예측 부정확 등 시행착오로 7억11백만원보다 더 적자를 줄이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대의원 여러분 어떻습니까? 새로 벌인 사업이 2년만에 흑자를 낼 수 있다면, 더욱이 가공사업을 2년 만에 흑자를 낼 수 있다면 누가 새로운 사업을 안 하겠습니까? 수익에 민감한 주식회사도 흑자 실현 기간을 3~5년으로 봅니다. 지금 흑자를 내는 김치 공장도 초기 5년 동안은 적자를 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은행 점포도 신규개설을 하면 3년 동안 적자를 눈감아줍니다.

당면한 농업의 위기 속에서, 농가 수취가격을 올려주고, 노령화된 농가의 노동 강도를 줄여주기 위하여 합병농협의 여력으로 신규사업을 시도한 것입니다. 짊어지고 일어날 만할 때 일어나야 저물기 전에 집에 들어갑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편에 섭니다. 저는 그러한 소신으로 신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어쩌다가 우리 농협이 이렇게 흑자적자 칼날에 무참히 해부를 당하는 신세가 됐습니까?

어차피 흑자적자 이야기가 났으니 그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얼마나 경제가 어려우면 매년 1조원씩 흑자를 내던 농협중앙회가 지난해에는 적자를 겨우 면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조합들이 손익목표 반토막을 냈습니다. 우리는 40억 목표에 48억5천1백만원의 좋은 업적을 올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농민회에서 연말에 조합원 대출금이자 올려서 낸 수익이라고 합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실제 조사를 해보니 조합원대출이 전체 대출금의 23%인 1,797억이었습니다. 연말에 이자를 올려서 대출금이자 더 받은 돈이 7억이었습니다. 그런데 조합원 예금은 전체 예금의 31,7%인 3,007억이었습니다. 연말에 이자를 올려서 예금이자 더 드린 돈이 10억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연말에 순천농협이 이자를 조정함으로써 우리 조합원들은 3억의 이익을 보신 것입니다.

48억5천의 흑자는 대부분 준조합원 비조원을 상대로 한 대출, 공제, 카드추진, 상각채권 회수 그리고 김치공장, 파머스 마켙 등에서 직원들이 휴일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눈물나게 노력해서 번 돈입니다.

지난해 우리 농협은 농협개혁 우수사례집에 가장 많은 사례가 실렸고, 연말에 2년 연속 클린뱅크 인증, 고객만족대상, 판매사업우수사무소 표창을 받았습니다. 정상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우리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줘야 하고 경영책임자에게는 우수경영자상을 줘야 맞습니다.

우리 직원들 저력이 있고 협동단결력도 뛰어납니다. 자본 여력도 있고, 사업 설비나 비전 설정도 잘 되어 있으며 몇몇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해나가기만 한다면 경영면에서 전국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농협으로서 앞으로 더욱 잘 성장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순천농협은 눈에 보이지 않은 병이 들어 있다고 봅니다. 저는 3가지를 걱정합니다.

첫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주워온 농부가 한꺼번에 많은 황금알을 차지하기 위해서 거위의 배를 갈라 결국 거위를 죽이고 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농협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직원들이고, 자기자본이고 신규사업을 위한 투자이고, 조합원들의 참여의식입니다. 이들이 미래의 농협의 위기를 막아내고 수익을 발생시켜서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직원들 분위기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격려는 커녕 책임만 묻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느냐는 쪽입니다. 또 결산 결과 수익금을 충당금이나 신규투자 혹은 내부유보를 많이 해야 한다는 쪽보다는 나눠 먹기식으로 분배를 더 많이 하자는 쪽으로 외부 압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또 조합원들도 조합의 미래 경영을 걱정하기보다 우선에 무슨 혜택을 많이 받느냐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좀도리 쌀로 출자를 늘리던 초창기 면단위조합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마을에 살날이 그리 많지 않은 나이 많은 노모에게 아직도 용돈 안내놓는다고 삿대질을 하는 불효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거위는 의외에도 쉽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기 전에 보호를 해야 합니다.

둘째는 신규사업은 악이다. 특히 판매 가공사업은 손대면 안 된다는 조직문화입니다. 지난해 하반기에 이사회에서 신규사업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만 가을에 밤 수매사업을 하려고 지점 판매과장 회의를 소집했더니 모두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밤 수매하느라 아무리 고생해 봤자 잘되면 당연한 것이고 못 되면 책임추궁만 당하는데 누가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규모 합병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면단위 조합이 하기 어려운 경제사업을 합병농협이 제대로 해서 농가소득을 올려주자는 것 아니었습니까?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음에도 적자보니까, 어려우니까 하지 않아야 합니까? 지금이야말로 조합원과 직원이 한마음이 되어서 경쟁력있는 가공기술 도입과 유통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봅니다. 한시바삐 신규사업의 당위성이나 따지고 흑자 적자를 따지는 이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할 만 할 때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셋째 위기를 극복하고 위험을 감수하려면 외부의 압력과 충격을 견뎌낼 만한 맷집이 있어야 한다는 봅니다. 저는 그 맷집이 주인정신이라고 봅니다. 이번에 우리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순천농협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농협이 조합원에게 더 잘 봉사하고 더 성실하게 일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공신력과 업무집행권을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익성을 띈 농협조직에 대해, 사업부진을 이유로 경영권의 상징인 임원의 퇴진요구, 무리한 수매가와 분배식 예산집행 요구, 등을 들어 무려 두 달이 가깝도록 영업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 상임이사는 퇴진하고 조직의 사업추진 태세는 급속도로 위축되고 고객의 신뢰와 농협이미지는 추락했습니다. 이에 대해 620여명 직원이 있고, 저를 포함한 임원이 있고, 대의원회가 있고, 조직의 대표권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주인다운 방어적 노력을 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부끄럽고 걱정스럽습니다. 일터에 일꾼들이 소신과 믿음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주어야 경쟁력과 창의력이라는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주춧돌이 흔들리면 건물은 무너집니다.

존경하는 대의원 여러분

끝까지 경청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사람을 사랑해주신 조합원 여러분, 조합장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의 사랑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 그리고 순천농협의 발전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09. 2. 18.

유 상 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