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문화재단 설립과 관련하여...

감나무 밑에서도 먹는 수업을 하라

2015. 03.20(금) 22:44

최근 순천시에서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문화재단을 설립한다고 한다. 이는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새정부의 국정철학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창조시대로의 필연적인 흐름을 반영한 현상이기도 하다.

세계는 지금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기반으로서 가치 지향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문화 창조의 중요성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많은 미래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물질적인 자본재가 아닌 지식, 창의, 정보 등 무형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질 전망이며, 세계은행(World Bank)의 ‘국부(國富)는 어디에 있나’라는 보고서에서도 ‘자본을 자연자본, 기계와 장비, 사회 인프라 등 돈으로 만들어 낸 자본과 보이지 않는 자본으로 구분하고 이 가운데 보이지 않는 자본인 무형의 자본을 21세기 국가의 힘이라 규정하였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자본인 무형의 자본을 기르기 위해 순천시에서 기금을 출연하여 문화재단을 설립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확실한 밑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는데도 시중에는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확산되고 있다. 맨 먼저 거론되는 얘기는 ‘언제까지 관 주도의 일방통행을 할 것인가’는 것으로, 순천시에서 문화재단을 설립하겠다면서 지역 주민이나 문화예술인 등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순천시 관계자는 ‘추후 어느 정도 방향이 설정되면 공청회를 가질 예정이다’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오랫동안 자구적 노력을 기울인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무시한 처사’라며 강한 반발을 보인다. 누구보다도 더 지역 문화예술의 실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지역문화예술인이기에 ‘관계 공무원들의 편의적 발상에 의한 밑 그림을 설정하여 일방적으로 주민을 설득하려는 관행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순천시에서 기금을 출연하여 설립한 문화재단을 이끌 이사진을 구성하면서 지역인이 아닌 타 지역 인사가 거론된다는 사실에 더욱 분개한 지역민은 ‘지역민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 처사다. 물론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하여 지역 문화예술계의 발전을 위한 제언이나 운영도 좋다. 하지만, 지역민이 지닌 역량을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평가해 보았으며, 무엇으로 가늠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더욱 강한 반발을 보인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순천시의 문화재단 설립과 관련된 기초 문건에는 순천시가 지닌 현실에 대한 어떠한 데이터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어떠한 목적을 지닌 정책을 펼치기에 앞서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기반조사는 물론 그에 합당한 방안이 정책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순천시 관계자가 밝힌 자료를 보면 재단 운영과 시설 관리 등 앞서 문화재단을 설립한 타 지자체에서 이것저것 베껴 짜 맞춘 것으로, 지금까지 시 관계자가 관리해오던 업무의 이관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실상이 그렇다면 구태여 경비를 들여 재단을 설립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약간 비약하여 표현하자면 해당 업무의 담당만 한 자리 늘리는 모습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재단 설립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을 줄이는 긍정적인 면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시 관계자의 해명은 전혀 잘못된 생각은 물론 아니다.

또한 지금까지 문화예술단체나 개인에게 지원되던 보조금 사업에 ‘별 거부감 없이 잘 해왔다’라는 한 공무원의 얘기는 경제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어쩔 수 없는 궁색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행정편의적이며 관행적 타성으로, 행정에서 요구하는 모양에 마지못해 부응하는 형식적인 행위로는 창조경제시대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공직자의 입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모험’은 금물이다. 행정에 서툰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서툰 행정처리는 아마츄어리즘의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화예술이 가지는 속성을 생각하면 그 비효율성이 바로 지역의 실상이라고 했을 때 보이지 않는 힘의 가치가 시대적 요구라는 사실과 부응하여 대응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 결론이 보인다.

세계적 통신기기의 선두 자리를 오랫동안 고수한 ‘노키아’회사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장의 욕구에 100% 집중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확실한 과거보다는 불확실한 미래가 더 낫다”고 했다.  지역의 인재들이 불확실해 보일지 모르나 앞으로의 세계는 정보와 지식, 기술력과 함께 창의인력과 보유 문화자원에 의해 경쟁력이 좌우되는 시대다. 기술과 산업 환경의 변화 폭이 커지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에 역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과 시기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도시만이 미래사회를 선도할 수 있다.

그 지역이 지닌 문화적 깊이와 다양성, 자율성과 열정을 바탕으로 한 인재들의 창의적인 발상이 뒷받침될 때 시대를 주도하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여 이제라도 지역민의 의견을 듣고, 지역민의 능력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 하에서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수확도 거둘 수 없다는 의미의 ‘감나무 밑에서도 먹는 수업을 하라’는 우리나라 속담을 기억해야 한다.

오승택 ohsgtack@hanmail.net        오승택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